청와대 비서들이 집단사표를 냈다. ‘국정혼란과
국정공백을 감수할래’ 아니면 ‘정상적인 국정 유지를 선택할래’하며 집단사표를 냈다. 그리고 대통령은 ‘정상적인 국정유지’를 선택한다. 언뜻 보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움 속에 ‘작위와 인위’가 독사 대가리처럼 꼿꼿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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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 주재를 위해 김우식 비서실장과
회의장에 들어가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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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사람을 위해서 ‘장관’들이 집단으로 사표를 냈다고 가정해보자.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관들보다 어떤 면에서 보면 훨씬 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사표를, 그것도 집단사표를 내고 대통령이 선별적으로 처리하면서 이 사건을 마무리하려 한다.
추천과 검증을 분리하여, 추천한 국무총리 이해찬과 비서실장 김우식은 살리고,
검증에 책임을 물어 인사수석과 정무수석만 잘랐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기준 파동’의 핵심에 김우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40년 지기. 이것으로 이기준과 김우식의 관계는 설명이 가능하다. 총리 이해찬이 추천과정의 형식이면 비서실장이자 인사위원회 의장인 김우식은 추천과정의
내용이다. 김우식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이런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한데 그 김우식이 살아남았다.
김우식이 생존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참으로 참담하다.
장관들이 집단사표를 내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대 국민협박정치를 김우식이 자행한다.
자신의 문제였고, 자신만 사표를 쓰면 ‘이기준 파동’은 마무리될 수 있었다. 한데 김우식을 살리기 위해서
‘조폭적인 의리’를 보여준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행태도 문제지만, 수석들이 같이 사표를 내자 한다고 김우식은 자신의 사표와 더불어 수석비서관들의 사표까지 한꺼번에 모집해서 대통령에게
내밀었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면, ‘나 하나로 마무리할 수 있다면, 나 하나로
족하다. 여러분들은 이후 상황을 수습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야 할 사람들이다. 결코 집단
사표는 안된다. 이것은 한국을 엄청난 위기로 몰아 갈 것이다’며 수석비서관들을 설득해서 사표 제출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만 살겠다는 심산인지 아니면 자기가 죽으면 모두 죽는다며 국민들을 협박하겠다는 심산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김우식은 다른 수석비서관들의 사표까지 거둬들였다.
이것이 한국 지식인들의 기본 폼새다.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 장대환 전
국무총리 서리,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그리고 김우식 현 비서실장. 이들이 한국의 지식인들이 보여준 대표적인 표상이다.
'온갖 부정비리는 자기들끼리 다 해먹고, 일개 교수가 부동산이니 병역비리니
부정입학이니 한국의 기득권층이 하는 못된 짓은 나서서 자행했다. 그리고 입으로는
한국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는 둥 이래서는 안된다는 둥 하며 공자인체 예수인체 폼은 폼대로 다 잡고 살았다. 이들을 한국 언론은 ‘저명인사’라고 부르고 ‘사회지도층 인사’라고 치켜세운다. 가당찮은
짓거리가 상식으로, 존경으로 변질된다.'
또 다른 한국 언론의 블랙코미디를 본다. ‘합리적
보수주의 노선 또는 실용주의 노선의 승리’라고 이번 ‘이기준 파동’을 평가하는 자들이
있다.
도대체 이들이 왜 합리적 보수주의이며 실용주의인가. 이기준이 그 만큼 해 먹었으면 그의
40년 지기 김우식은 과연 이기준보다 깨끗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김우식이 생존하는 방식을 보면,
국정을 생각하는 태도를 보면, 이기준보다 깨끗하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한국
언론의 적극적인 방어자세로 인해 김우식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한국교육의 ‘3불
정책’ 중 두가지인 ‘고교등급제 및 기여입학제’를 한국 대학의 어떤 총장보다 더 강력하게 추진한 자가
바로 연세대 총장시절의 김우식이다.
고교등급제와 기여입학제가 실용주의 노선인가. 이 정책들은 ‘많이 가지지 못한 학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정책이며, 한국 학생들을 ‘큰 부자 부모를
가진 학생’과 ‘큰 부자 부모를 갖지 못한 학생’으로 이분화하는 정책이다. 부모와 자식이 돈을
중심으로 갈등하게 하는 정책이요, 남북과 동서로 나뉜 한국 사회를 ‘강남과 비강남’으로 또 쪼개는 정책이다. 이것이 실용주의 노선이요 합리적 보수주의인가.
택도 없는 평가요 발상이다.
이들은 단지 자신과 자신 주변의 이익을 위해서 한 평생을 살아온 자들이요, 세상을 향해서, 큰 돈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서 한번도 역지사지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여전히 권력의 핵심부를 배회하고 있고, 권부의 핵심에서 ‘장난질’을 치며 제 논에 물대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노무현정부는 이들이 무슨 신주단지나 되는 듯 보듬어 안고 세상의 눈을 가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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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서울역 광장에서
야간유세를 갖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 노무현정부가
이제는 선택할 일이다. 개혁과 도덕의 이미지로 대통령이 되었고, 그 이미지가 빠른 속도로 부도덕 비양심 세력의 옹호자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다 안다.
그렇다면 진정 이것이 한국사회를
위한 길인지, 아니면 이미지메이킹 하면서 표심을 흔들었던 대통령 선출과정에서의 수많은 약속들이 한국사회를 위한 길인지를 판단하고, 이제 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보수와 개혁의 길보다
지금 노무현정부가 처해 있는 상황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저급한 차원의 길, 도덕과 양심이냐 아니면
비도덕과 비양심이냐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올바른 판단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날이면 날마다 되풀이 되는 좀스런 대(對)국민협박정치도 이번 기회에
단절하는 용기도 기대한다.
양문석 / EBS 정책위원, 2005년 01월 11일, 출처: 경향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