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교수 재임용 탈락사건 일지



1996년 10월 17일

미대 초기 교수진(장발, 장우성, 노수현)의 친일행적을 지적한 논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ㆍ공예교육 50년사: 1946-1996’을 발표함.


1996년 11월 19일

미대 학장(윤명로, 서양화과 교수)실에 불려가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한 삭제를 종용받음.


1996년 11월 20일

청문회 형식으로 개최된 미대 전체 교수 간담회에서 미대 교수들에게 논문발표의 동기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음.


1996년 12월 9일

미대 조형연구소장(한운성, 서양화과 교수)으로부터 위의 발표 논문 중 문제된 부분을 삭제하지 않을 때 미대 학술지 ‘조형' 지에 게재를 불허하겠다는 공문을 받음.


1996년 12월 12일

위의 조형연구소의 통고에 대해, 삭제할 수 없는 이유를 적시하고 논문을 게재하지 않을 때 학문연구의 자유를 침해한 중대한 검열 행위로 간주하겠다는 답변서를 제출. 1997년 봄에 발간된 조형지에서 논문이 삭제됨.


1997년 2월 15일

산업디자인과 교수회의는 대학원을 실기중심으로 운영한다고 다수결로 정함. 그 결과 1997년 봄학기부터 대학원생 지도를 배제당함.


1997년 12월 2일

단독 저서, “21세기 디자인문화 탐사”(서울: 솔출판사)가 월간 디자인에서 수여한‘97 올해의 디자인상 저술부문상을 수상. 이 저서는 98년 재임용 심사용 실적물로 제출됨.


1998년 6월 중순

재임용 심사용 연구실적물 200%(저서 1권, 논문 1편)을 미대 행정실에 제출.


1998년 7월 7일

미대 교무행정실로부터 다음날 (8일) 오전 9시까지 연구실적물을 추가 로 제출하라고 오후 5시 30분에 통보받음. 당일 6시에 6편을 교무행정 실에 제출함. 모두 총 800%(저서 1권, 논문 8편)의 실적물이 제출됨.


1998년 7월 13일

미대 인사위원회(제7차)는 회의록에 구체적인 심사용 실적물과 결과를 적시하지 않은 채 대학교원(전임교원) 재임용 추천 재심의 항목에 다음과 같이 명시함.
1) 연구실적 재심사 평가미달 확인
2) 연구실적 외의 평가사항을 인사위원장에게 위임하기로 무기명 투표로 결정함(가 4, 부 3)


1998년 8월 24일

제632회 대학본부 인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미대에 재심의를 '요청’하는 안을 찬성 17표 반대 11표 기권 1표로 통과시켜 미대에 재심을 요청함.

1) 김민수 조교수의 심사대상 실적물 이외의 다른 논문의 내용이 금번 재임용 제외 추천에 영향을 주었다는 개연성을 주장하는 여러 단체 및 개인들의 의견이 있었으며
2) 재임용과 관련한 연구실적 심사과정 등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재심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있었음


1998년 8월 28일

미대 인사위원회(제11차)가 개최됨. 7명의 인사위원 중 2인의 위원이 사표(윤명로, 양승춘)를 제출하고 5명으로 인사위원회를 개최함. 다음과 같은 심의사항을 회의록에 남김.

가. 김민수 조교수의 재임용 재심의뢰 결과 연구실적물이 재임용 심사 기준에 미달되었음을 확인함.
나. 그러나 김민수 조교수의 과거의 연구실적 및 전문영역의 학술 활동을 고려하고, 장래의 학문적 성과의 가능성을 참작하여 재임용 추천여부를 투표로 결정.

투표결과 가4, 부1로 재임용을 추천하기로 의결함.


1998년 8월 31일

대학본부는 서울대학교 규정에 없는‘예비심사위원회’를 제633회 대학본부 인사위원회 전에 개최해 재임용 제외 보고안을 인사위원회에 상정하 기로 결정하고 이를 보고함. 이에 대학본부 인사위원회는 재임용 탈락을 최종 결정함.


1999년 5월 17일

김민수 교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정식 발족함.


1999년 6월 4일

서울대 법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김민수교수의 복직과 학문의 자유를 위한 공청회 개최. 재임용 심사 논문, “시각예술의 측면에서 본 이상 시의 혁명성”에 대해 발제자들은 탁월한 학제적 연구의 성과로 인정함. 공청회 후 ’김민수 교수 복직 투쟁백서‘ 발간 기념회가 동 기념관에서 개최.


1999년 7월 9일

미술대학에서 ‘연구내용 부실’과 ‘해당전공 분야에 적합치 않다’고 판정한 논문‘시각예술의 측면에서 본 이상 시의 혁명성’에 대해 세계 유수의 디자인관련 국제학술지 <비저블 랭귀지, Visible Language>는 “디자인 분야에서 좀처럼 개발되지 않았던 비교문화 연구의 지평을 확장한 탁월한 논문”이라 공인하고 1999년 11월(vol. 33.3)에 게재키로 공식 서면 통보함. 디자인 관련 한국인 학자로서 처음 게재. 11월에 공식 게재.


1999년 7월 28일

공동대책위 차원에서 공청회의 결과를 대학본부에 통보하고, 김교수 재 임용 탈락에 대한 문제 지적과 해결을 위한 답변을 요청하는 서면 질의 서를 총장에게 발송. 이 후 질의서에 대한 일체의 답변이 없었음.


1999년 9월 1일

14인의 대책위 교수들로 구성된 ‘김민수 교수 복직을 위한 릴레이 연대 강좌,’ <디자인과 생활>이 자연대 28동 303호에서 시작됨.

1) 디자인과 현대철학: 김상환(인문대 철학과)/ 김민수
2) 이상시와 현대물리학: 박창범(자연대 천문학과)/ 김민수
3) 가상공간과 온라인 미디어: 강명구(사회대 언론정보)/김민수
4) 한국 전통문화와 현대적 삶: 김인걸(인문대 국사학과)/김민수
5) 서양문화사와 물질문명: 최갑수(인문대 서양사학과)/김민수
6) 민중미술, 그 오해와 편견: 한인섭(법대 법학과)/김민수
7) 디자인의 국제경쟁력과 한미투자협정: 김진균(사회대 사회학과)/김민수
8) 만화, 애니메이션의 사회사적 의미: 주경철(인문대 서양사학과)/김민수
9) 온생명과 물질문화: 장회익(자연대 물리학과)/ 김민수
10) 경제사로 본 한국인의 생활문화: 안병직(사회대 경제학부)/김민수
11) 디자인과 한국정치: 김세균(사회대 정치학과)/김민수
12) 가상공간과 컴퓨터 게임의 법칙: 신영길(자연대 전산과학)/김민수
13) 한국 디자인의 탈식민성: 김현철(공대 건축학과)/ 김민수


1999년 9월 17일

6인의 대책위원들(장회익, 김진균, 김세균, 최갑수, 김상환, 주경철)이 미술대학 학장(부수언, 디자인학부)을 방문하고 해명을 요구했으나, 납득할만한 설명을 듣지 못함.


1999년 10월 15일

서울대 학내 교수서명 추가분 확인. 총 310여명 서명 완료.


2000년 1월 18일

김민수 교수가 피고 서울대 총장을 상대로 낸 ‘교수재임용 거부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이재홍 부장판사)는
서울대가 김민수 교수에게 내린 교수재임용 거부처분을 취소한다”고 원고 승소판결을 내림. (참조: 1심 판결문)


2000년 2월 3일

서울대는 위의 판결에 불복하고 고등법원에 항소함.


2000년 1월 25일

대책위 교수 5인(안병직, 김진균, 최갑수, 한인섭, 주경철교수)이 이기준 총장을 면담함. 이 자리에서 대책위는 김민수 교수의 승소판결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고 대학본부측에 항소를 포기할 것을 권유함. 하지만 만약 대학본부측에서 항소할 경우 대책위가 결연한 의지를 갖고 있음도 아울러 표명함.


2000년 1월 26일

대책위원 최갑수 교수가 교무처장을 개별 면담.


2000년 1월 28일

안병직 대책위 상임대표가 교무처장을(권두환, 현 인문대 학장) 개별 면담. 이상과 같이 대책위 교수들이 대학본부측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대학본부는 재임용심사 당시 실적물 심사에 대한 평가 결과를 다음과 같이 최초로 털어 놓았음.

(참조: 법원에 제출된 실적 심사표)

▲ 1차심사 결과(1998.7.3): 심사평가 미달


1. 저서, 21세기 디자인문화탐사...... (합격) (*심사표와 다름)
2. 논문, 21세기 디자인교육의 대전제.... (불합격)

▲ 2차심사 결과(1998.7.13): 심사평가 미달

1. 논문, 시각예술의 관점에서 본 이상 시의 혁명성...... (합격)
2. 광고이미지에 나타난 키치적 속성과 문화적 상징성의 해석....(불합격)

(* 위의 2차 심사 결과후 1998. 8. 24. 대학본부 인사위원회의 재심요청에 의해 다음의 3차심사가 이루어짐.)

▲ 3차심사 결과(1998.8.31): 심사평가 미달

(1차심사의 심사 대상물과 동일, 동일한 판정)
1. 저서, 21세기 디자인문화탐사...... (합격)
2. 논문, 21세기 디자인교육의 대전제.... (불합격)

* 흥미로운 사실은 이제껏 대학본부측이 주장해 왔던 2차심사 때의 논문, "시각예술 의 관점에서 본 이상 시의 혁명성"이 합격점을 받았다는 사실임. 그동안 미대와 대학 본부는 김 교수의 재임용 탈락 후 이 논문이 소위 "디자인 분야의 논문"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으나 이번 면담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음.
* 그렇다면 김민수 교수는 1차와 2차 심사에서 각각 합격점을 받은 2개의 실적물로 재임용 심사 기준인 '200% 만족의 심사요건'을 이미 만족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미 합격점을 받은 2편의 실적물을 3차 심사에서 다루지 않은 것은 학문외적인 요인이 재임용 과정에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함.
* 이러한 사실에 기초해 본 대책위는 당시 미대 학장이 기관장으로서 가져야할 '신의성실'과 '공명정대함의 원칙'에 위배되어 고의적으로 김민수교수를 재임용 탈락시키고자 했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함.


2000년 3월 15일

14인의 대책위 교수들로 구성된 ‘김민수 교수 복직을 위한 릴레이 연대 강좌,’ <디자인과 생활>이 자연대 28동 103호에서 다시 시작됨.


2000년 8월 31일

서울 고법 특별 11부 각하


2003년 2월 27일

재임용 관련, 구 사립학교법 제 53조의2 제 3항, 헌법 불합치 결정


2004년 4월 22일

대법원 전원 합의체, 상고심에서 원고청구 각하 결정을 내렸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 (참조: 판결문)


2004년 12월 13일

김민수 교수 재임용 탈락시 불법행위에 관한 국회청원


2005년 1월 28일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승소 (참조: 판결문)


2005년 2월 21일

김민수 교수 재임용 결정에 반발, 권영걸 미대학장등 미대교수들 집단사표 소동


2005년 2월 28일

정운찬 총장은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라


2005년 3월 3일

김민수 교수 복직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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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교수 복직을 위한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김진균(사회대 사회), 안병직(사회대 경제), 이종흔(치과대 구강생리), 장회익(자연대 물리), 최종태(경영대 경영) 교수

추진위원: 강명구(언론정보), 고 원(독문), 고철환(해양), 김광우(건축), 김상환(철학), 김세균(정치), 김은경(서어서문), 김인걸(국사), 김창호(수학), 김현철(건축), 노명호(국사), 박창범(천문), 백도명(환경보건), 소광섭(물리교육), 송영배(철학), 신영길(전산과학), 심봉섭(불어교육), 오용록(국악과), 오종환(미학), 이애주(체육), 이종숙(영문), 이형목(천문), 임홍배(독문과), 정용덕(행정대), 조흥식(사회복지), 주경철(서양사), 최갑수(서양사), 최권행(불문), 최무영(물리), 최승언(지구과학), 최영찬(농경제사회), 최정운(외교), 한인섭(법학), 한정숙(서양사), 홍성걸(건축), 황상익(의대 醫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