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교보협
송나라 군사들: 해직교수들
초: 사학법인 + 교육부 + 국회
현대판 송양공: 전 인천대, 김석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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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송양공이 즉시 전서의 말미에 서명을 하여 십일 월 삭 일에 홍수(泓水) 북쪽의 땅에서 회전을 하기로 약속하였다. 또한 군사들에게 명하여 큰 기를 만들어 인의(仁義)라는 두 글자를 쓴 후에 로거(輅車)에 매달게 하였다. 공손고가 속으로 비통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조용히 락복이(樂僕伊)를 불러 불만을 털어놓았다.
" 전쟁이라는 것은 서로 죽이고 죽는 살벌한 싸움인데 가당찮은 인의만을 부르짖고 있으니 나는 주군이 말하는 인의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오! 하늘이 우리 주군의 혼백을 빼앗아 가 버려 우리는 정말로 위급한 상황에 빠진 것 같소! 우리들은 필히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전투에 임하여 나라를 잃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할 것이오. "
이윽고 회전을 하기로 한 날이 되자 공손고가 아직 닭이 울기도 전인 새벽에 기상을 하여 양공을 배알하고 진용을 엄하게 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한편 성득신이 이끄는 초나라 군사들은 홍수의 북쪽 강변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부장 투발(鬪發)이 와서 의견을 말하였다.
" 송나라 군사들이 포진을 끝내고 우리의 진격을 막아서기 전에 강을 건너려고 한다면 아침 새벽 오고(五鼓) 때 해야 할 것입니다."
▶오고(五鼓)/ 새벽 4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을 말함.
성득신이 웃으면서 말했다.
" 송공은 세상물정에 어둡고 병사의 일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위인입니다. 내가 강을 이른 아침에 건넌다면 싸움은 일찍 일어날 것이고 천천히 건넌다면 싸움은 늦게 일어 날 것입니다.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드디어 날이 밝아 오자 초나라의 병거와 갑병들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공손고가 초나라의 병사들의 강은 건너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양공에게 청했다.
" 초나라 군사들이 날이 밝기를 기다려 우리가 보는 앞에서 유유히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은 우리 송나라를 깔보고 있는 것입니다. 초나라 군사들이 강을 절반쯤 건넌 지금이야말로 앞으로 돌격하여 공격할 때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송나라 전군으로서 초나라의 군사들의 절반을 꺾을 수 있습니다. 만약 초군이 강을 다 건넌다면 초나라 군사들의 수가 우리의 두 배가 넘어 대적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송양공이 손가락으로 인의(仁義)가 써진 큰 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 그대는 저 기에 쓰인 인의(仁義)라는 두 글자가 보이지 않는가? 과인은 진을 펼쳐 당당하게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데 어찌 강을 다 건너오지도 못한 적군을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공손고가 양공의 답답한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울부짖을 뿐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초나라 병사들은 모두 무사히 강을 건너게 되었다. 초군 대장 성득신은 머리에는 옥으로 치장한 모자를 쓰고 역시 옥으로 장식한 투구 끈을 맨 다음에 화려한 수가 놓여진 비단 전포 위에 부드러운 천으로 겹겹이 누벼 만든 갑옷을 껴입고 허리에는 조각을 하여 아름답게 장식한 조궁(雕弓)을 차고 손에는 긴 채찍을 들고 군사들을 지휘하여 동서로 포진시키는데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하여 안중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는 듯이 건방지게 짝이 없었다. 공손고가 다시 양공에게 달려와 말했다.
" 초나라 병사들이 금방 포진을 시작한 관계로 아직 대오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급히 북을 울려 우리의 군사들을 앞으로 돌진시킨다면 초나라 진영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
양공이 공손고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욕을 했다.
" 정말로 답답한 사람이로다! 너는 일시적인 승리만을 탐하여 만세에 빛날 인의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놈이로구나! 과인의 정정당당한 군사들로 하여금 어찌 대오도 갖추지 못한 적군을 향하여 북소리를 울려 공격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이냐?"
공손고가 가슴속에서 울어 나는 분노를 삼키며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에 초나라의 군사들은 전투 대오를 갖추게 되었다. 초나라 군사들은 물론이고 병거를 끄는 말들도 모두 씩씩하기 짝이 없었다. 초나라의 군사들과 병거들이 넓은 들판을 가득 메우자 송나라 병사들은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띄웠다. 양공이 북소리를 울려 진격하라고 명령을 내리자 초나라 진영에서도 역시 북소리가 났다. 송양공이 스스로 긴 창을 손에 들고 공자탕(公子蕩)과 향자수(向?守)의 호위를 받으며 궁궐의 문을 지키는 관리들인 문관(門官) 만으로 구성된 군사들을 이끌고 병거를 휘몰아 초나라 진영을 향하여 돌진하였다. 성득신은 송나라의 군사들이 달려오는 기세가 매우 흉맹한 것을 알고 조용히 전령을 보내 명령을 하달하여 초나라 진채의 문을 열게 하고는 양공이 거느린 일대의 거만만을 안으로 들이게 하였다. 공손고가 뒤를 바짝 쫓아 와서 양공을 보호하려고 하였으나 양공은 이미 초나라의 진영 안으로 쇄도해 들어가고 난 후였다. 초나라 영문 앞에 한 사람의 대장이 버티고 서 있다가 공손고를 보자 소리쳤다.
" 자! 빨리 이쪽으로 와서 본격적으로 한번 싸워 보자!"
그 장수를 자세히 보니 초나라의 부장(副將)인 투발(鬪發)이었다. 공손고가 듣고 분기탱천하여 극을 손에 들고 투발을 찌르려고 달려들었다. 투발이 칼을 허리에서 빼 들고 대적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어우러져 칼과 창을 주고받는데 미처 20여 합도 겨루기 전에 송나라 장수인 락복이(樂僕伊)가 한 떼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싸움을 거들었다. 투발은 얼굴에 황망한 기색을 띄웠다. 마침 초나라 진중에서 한 사람의 장군이 달려나와 싸움에 밀리고 있던 투발을 도왔는데 보니 초나라의 상장(上將)인 위여신(蔿呂臣)이었다. 위여신이 락복이와 어우러져 싸웠다. 공손고가 양쪽 진영이 혼란한 틈을 있는 틈을 이용하여 주위를 살펴보더니 극을 버린 후에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 들고는 초나라 영채를 향하여 돌입하였다. 투발이 손에 칼을 들고 공손고의 뒤를 쫓자 송나라의 장수인 화수노(華秀老)가 달려와서는 투발의 앞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이 양쪽 진영 사이에서 혼전을 벌렸다. 공손고가 초나라 진영 안으로 들어가서는 좌충우돌하던 끝에 동쪽 모퉁이에서 철갑으로 무장한 갑사들이 마치 숲을 이룬 듯이 무엇인가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공손고가 자기의 병거를 그곳으로 황급히 몰아 달려갔다. 그때 마침 송나라 장군 향자수(向?守)가 유혈이 낭자한 얼굴로 급히 공손고를 불렀다.
" 사마는 속히 와서 주군을 구하시오!"
공손고는 향자수를 쫓아 겹겹이 둘러쳐진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자 성문을 지키는 관리들로 구성된 많은 군사들이 하나 같이 몸에 중상을 입고있었으나 여전히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뒤로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양공은 평소에 밑에 사람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문관(門官)들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초나라 군사들은 공손고가 매우 영용(英勇)하다는 것을 알고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공손고가 앞으로 나가 쳐다보니 공자탕(公子蕩)도 중상을 입고 인의라고 쓴 큰 기를 싣고 다닌 병거 아래에 누워 있었는데 인의대기(仁義大旗)는 이미 초나라 군사들에게 탈취 당하고 난 후였다. 양공도 몸의 여러 곳을 창에 찔리고 오른쪽 넓적다리에 화살을 맞아 무릎의 힘줄이 끊어져 일어 설 수 없게 되었다. 공자탕은 공손고가 자기 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 사마는 빨리 와서 주군을 부축하여 데려가시오. 나는 이곳에서 목숨이 다한 것 같소!"
공자탕이 말을 마치고 숨을 거뒀다. 공손고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공손고가 양공을 부축하여 자기의 전차에 옮겨 싣고는 자기 몸으로 양공을 가려 보호하며 용기 백배하여 포위망을 뚫으려고 하였다. 향자수(向?守)가 후위를 맡고 문관(門官)들은 병거의 양쪽을 호위하면서 한편으로는 싸우고 또 한편으로는 도망쳤다. 공손고의 일행이 초나라 진영 밖으로 나왔을 때는 뒤를 따르던 문관들은 한 명도 같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송나라의 병거와 무장병들은 십중팔구가 꺾였다. 락복이와 화수노는 송양공이 호랑이 굴에서 탈출해 나오는 것을 보자 지금까지 싸웠던 초나라 장수들을 버리고 각자 등을 돌려 달아났다. 성득신은 승세를 타고 송군의 뒤를 쫓자 송군은 대패하고 달아났는데 버리고 간 치중과 무기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공손고가 양공을 태우고는 밤낮으로 전차를 몰아 도망쳐 송나라 도성인 수양성(紙陽城)에 당도하였다. 송나라의 군사들은 대부분이 싸움 중에 죽어 그 부모 처자가 모두 조문밖에 모여서 양공이 사마의 말을 듣지 않아서 싸움에 지게된 것이라고 하면서 원망의 말을 하였다. 양공이 백성들의 말을 전해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 ' 군자는 부상당한 사람을 다시 공격하지 않으며, 반백의 나이 먹은 사람은 포로로 하지 않는다.'(君子不重傷, 不擒二毛)라고 했는데 과인이 인의로써 군사를 일으켰는데 어떻게 하여 남의 위태로움을 이용하여 적을 괴롭힐 수가 있겠느냐?"
그 소리를 전해들은 송나라의 온 백성들은 조소하고 비웃었다. 송양공이 헛된 인의를 행하려다 싸움에 져서 많은 군사를 죽게 만들었다는 뜻의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말을 만들어 후세 사람들에 전한 것은 홍수의 싸움에서 일어난 일을 말한 것이다. 염옹이 시를 지어 송양공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양승국의 열국지 해설에서 발췌 인용
한 번더 해직교수들 가슴에 못박을 기회를 놓친, 김석호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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