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소개하는 광주예술대학교는
전남 나주시에 소재한 이홍하 재단 산하의 학교로 93년 설립되어 97년에 4년제 예술대학으로 개편된 호남 유일의
예술대학교이며, 이홍하 재단 이사장이 "예술의 고장인 남도에 예술의 혼을 키울 전문학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지역적인
수치이다"라는 거창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설립된 학교이다.
그러나 이홍하 이사장은 예술의 혼을 드높이겠다는 거창한 건학이념은 오간 데 없이 오로지
등록금을 수탈하는 전횡을 일삼았을 뿐 아니라 교수들의 교권과 인권을 짓밟으면서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글은
이러한 이사장의 온갖 행태를 두 눈으로 지켜봤던 한 교수의 수기이다.
내가 이홍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94년 2월이다. 4년간의 이태리 유학생활을
마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귀국 독창회를 하던 날 지도교수님께서는 광주소재 전문대학에서 전임강사 추천의뢰가 들어왔으니 가보라고
했다. 난 좋은 기회라 생각해서 그 즉시 서모 교수를 만나 서류를 제출했다.
그는 당시 나에게 "우리 이사장님은 청렴결백하시고, 교육관이 투철하신 분이라 모두에게 존경받는 분이니, 임용되거든 신설된 음악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이사장이 교육자 출신이라는 말에 믿음이 가 난 더욱 이 대학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며칠 뒤 이홍하 이사장의 면접을 거쳐 합격통보를 받았고, 마침내 큰 꿈을 안고 광주
예술학교 교수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드디어 입학식 날이 되었고 미리 가운을 준비하지 못한 신임교수들에게 교무과장은 품위를
지켜야 한다며 박사가운을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입학식 때 사용한 의자를 모두 식당으로 원상복귀하라는
"명령"이 교무과장으로부터 내려졌다. 신임교수들은 당황하였으나 마지못해 가운을 벗고 의자를 날랐다. 결국 운동장에 있던
의자를 모두 나르고 연단 해체까지 도왔는데, 이번엔 5층 강의실에 있는 강의용 의자를 1층으로 옮기라고 하는 것이었다.
3층에서 1층으로, 2층에서 4층으로 학생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며 그렇게 몇 시간을 의자를 날랐다. 잠시 후 이사장의 소집이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전체 교수들을 모아 놓고 이사장은 일부 교수들을 향해,
" 김 XX ! 너 체육선생이 뭐 하는 놈이야! 학생들
줄도 안 세우고 어디 갔었어? "
라며 호통을 치고 또
" 민 XX ! 너 어디 갔었어, 너희들은 내가 잘못
뽑았어, 다 재임용 탈락이야 "
라고 하면서 화를 버럭 내는 것이 아닌가, 또한 신임교수들을 모아놓고 하는 말씀인 즉,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사장이 실수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나중에 연구실 배치를 보고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이 대학 옆에 있는 고등학교 교실 한 칸에 칸막이도 없이 교수들을 두 명씩 배정했는데
한명은 신임교수, 또 한명은 옥천여상 교사 출신의 심복교수들로 배정되어 있었다. 이것은 북한식 5호 담당제를 닮은 2호
담당제가 아니었던가. 이렇게 시작된 광주예술대학교-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전문대학도 아니고 2년제 전문대학과정의
학교였다-의 교수생활은 참담함의 연속이었다.
- 일반서점보다 못한 학교
도서관
2천 1백 60명 정원의 광주예술대학교엔 5층 짜리 건물 한 동이 교사의 전부였다.
그래서 옆에 있는 고등학교 건물을 교수연구실, 강의실, 실습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도 부족하여 가건물을 지어 음악과, 연극영화과, 전통공예과 등에서 강의실과 실습실로
사용케 했다.
교탁도 제대로 없고 의자도 고등학교에서 버린 것을 주워다 쓰기도 했다. 비만 오면
여기저기서 물이 새고 운동장은 발이 빠져 들어갈 수가 없었다.
도서관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사서가 한명도 없고 도서정리도 문예창작과 교수가 하고
있었다.
책 권수 맞추기에 급급해 재단측은 서점에서 재고 처분되는 것까지 일괄 구입하고 있었다.
그래도 장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참고열람실과 정기간행물실은 고사하고 일간 신문 한부도 구독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각과의 기자재 현황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기자재가 없어 실습은
못하고 이론수업으로 대치하고, 일부 과목은 교과과정을 바꿔 2학년 과목으로 바꾸기도 했지만 다음해가 되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해마다 기자재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와 집회가 끊이질 않았다. 94년 기자재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집회가 있었고, 거기에 따른 대책회의가 진행되었으나 아무도 발언하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기다리다 학교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서 발언을 했다.
" 기자재도 없고 교육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재단에서는
장기적 발전계획을 제시하고, 학생과에서는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구타하지 말라. "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뒤 이홍하 이사장은 전화를 걸어와
" 다음 학기부터 음악과가 폐과되니 딴 데 알아 보라
"
고 했다. 나는 이해 할 수가 없다고 하자 이홍하 이사장은
" 온지 얼마 안 된 놈이 데모 주동이나 하고... 너
죽어 봐라 "
는 욕설을 퍼붓고 일방적으로 끊어 버렸다. 그후 2학기 개강 한달 뒤 재단측은 갑자기
가요전공을 만들고 내 제자들을 협박해 전공을 바꾸게 해서, 이사장의 지시라며 나에게 4시간만 수업을
배정했다.
- 화장실 청소하는
교수들
이홍하...
이홍하 이사장은 전남 고흥 태생으로 조선대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광주고등학교 등에서
생물을 가르치던 교사출신이다.
그는 교사생활을 하면서 목욕탕을 운영했고, 부동산에 투자해 모은 5천만원으로 부부의
이름자를 딴 홍복학원을 77년 설립했다.
이후 옥천여자상업전수학교, 대광여고, 광남고등학교를 설립했고, 91년에는 서남대학교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대학설립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93년 광주예술학교, 94년 광양전문대학교, 95년 한려산업대학교 설립, 또 97년에는
광주예술학교를 광주예술대학교로 개편 승인 받았고, 98년 개교를 목표로 하는 보건전문대학 건립도 거의
완공상태다.
물론 이들 학원의 요직은 모두 이홍하의 친인척이나 심복이 꿰차고 있다. 한 예를 들면,
이홍하의 조카 송현철은 수산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93년 광주예술대학교 조교로 발령됐는데, '인간과 환경'이라는 과목이
갑자기 개설되면서 수업을 하기 시작했고, 모든 학교의 운영을 좌우하는 실세로 행동했다.
한번은 교수용 소파가 들어오는데 송현철은 지시만 하고 학장과 교무과장, 학생과장은 짐을
나르게 했다. 조교가 학장을 지휘, 감독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더니 불과 25살에 광주예술대 교수로
임명되어버렸다.
이 대학에는 청소부가 한명도 없다.
그래서 교수들은 주말에 화장실 청소도 해야 했고 강의실 청소도 해야 했다. 또 물
청소도 해야 했고, 나무도 심어야 했다. 수위나 경비도 물론 없었다. 숙직도 교수들의 몫이었다. 93년에는 더욱 더
열악해서 김모 교수는 임용 후 미완공된 건물바닥 물갈이도 했고, 운동장에서 돌도 줍고 롤러로 땅고르기도 했다. 심지어는
공사장에서 들통을 진 교수들도 있었다.
현재까지도 남자 직원은 한명도 없고 기능직 여직원 두명과 야간경비 두명, 일당제 청소부
네명이 학교 관리원의 전부이다.
- " 학교를 폐교하겠다
"
이홍하 산하 대학들에는 아예 서무과가 없다.
옥천여상 서무과에서 모든 대학과 고등학교의 등록금을 통합관리하며 이사장은 개인 돈같이
마음대로 사용했다. 이홍하는 자신과 친인척 명의로 수백억원대의 땅을 매입했고, 남광병원도 부인 서복영 이름으로 구입했다.
그러면서도 교육사업에 투자했다고 주장하는 이홍하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97년 4월 검찰수사 결과 확인된 이홍하의 횡령액수는 95년 7월부터 97년 4월까지
불과 1년 9개월 동안 4백 9억원에 달한다. 이것은 이홍하 자신도
인정했고 1심에서 3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광주예술대학에서만 보더라도, 4년간 약 60억원을 횡령했다.
현재 이홍하는 1심에서 특정경제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죄 중 횡령, 사립학교법
위반, 뇌물공여죄, 사문서변조 등 7개 죄목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징역 1년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 항소중 보석금 1억원을 내고 석방되어서 다시 재단 이사장으로 복귀하기 위한 작업까지 펼쳤다.
이때 서남대 총학생회장을 5백만원을 주며 매수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오히려 총학생회장이
돈을 요구했다고 덮어 씌우다가 명예회손죄로 피소되어 있으며, 지난 5월 한려대 황민 교수를 폭행하고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혀 피소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학교에는 관선이사가 파견되었으나 교수들과 학생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현안문제인 횡령된 등록금 환수, 보복으로 예술대학에 임용되지 못한 교수협의회 9인 교수의 임용문제, 민주적이고 역량있는
총장영입 등을 방치하고 오히려 일부 이사는 교수협의회 교수들을 임용탈락시키겠다며 협박까지 했다.
한 학기가 지나도 정상화는 요원하고 관선이사 체제에서도 등록금은 구재단으로 넘어가고
결재도 구재단에서 이루어지는 파행이 지속되었다. 한 학기가 지나도 개선이 되지 않자 우리는 지난해 12월 26일 교육부
장관을 만나 상황을 알리고, 문제 이사를 교체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 성과로 전남대 송기숙 교수가 이사로 인선되어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이사들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송교수는 98년 2월 17일 교육부 장관에게 사퇴서를 제출하고 이사진을 개혁적인 인물로 전원
교체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교육부에서는 관선이사를 파견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개혁에
앞장섰던 교수협의회 교수 9명은 지난 2월 28일 재임용 기한을 넘겨 봉급도 받지 못하고 수업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대학은 점점 더 황폐되어 가고 있고 교수와 학생들은 지쳐가고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교육부에서는 이홍하가 작년부터 주장하던
것과 같이 광주예술대학을 폐교시키겠다고 하여 더욱더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
- 진정한 대학개혁을
위하여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을 부르짖었고,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대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현재도 수십 개의 대학에서는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리가 드러나 혼란을 겪고 있는 대학만도 20여개에 이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고, 법적으로도 명확하게 재단의 불법이
확인이 되었는데도 교육부에서는 계속 방치만 해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의 비리를 알리기 위해 교육부를 방문했을 때도 교육부 관계자는 "다 그렇다",
"오십보 백보다"라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신분에 불안을 느껴 비리를 들추어냈다고 매도하기도 했다. 교육부에서
사학비리를 근절할 의지가 없다면 교육개혁은 요원한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불법이 드러난 대학에는 검찰에 고발을 하고 관선이사를 파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공무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여야 한다. 그리고 교육부 공무원 실명제를 통해 부실한 인허가를 방지해야
한다. 지금 같은 체제에서는 누구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이렇게 수많은 사학들이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데는 개악된
사립학교법이 지금까지도 개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 이사장에게 총장과 교직원의 임면권을 모두 주고 또한 모든 경영권을 주고 있으며
거기다 교수재임용 제도라는 칼도 휘두르고 있으니 누가 감히 거역을 하겠는가? 독단을 견제할 아무런 방법이 없다.
교수들이 일부 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장치와 교직원 임면권을 총장에게 이양하고
교수협의회를 의무적으로 구성하게 하여 대학 내의 의회 역할을 맡겨야 한다. 또 재단 측에 의해 악용되고 있는
교수재임용제도도 폐지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진정한 대학개혁이 이루어지고 사립대학 비리문제가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
- 광주예술대학 교수협의회 회장 이보룡
위 글은 이홍하 산하 4개 대학 중의 하나인
<광주예술대학교> 교수협의회 회장인 이보룡 교수(음악학과)의 수기입니다. 현재 이홍하씨는 3개
고등학교와 4개 대학을 소유하고 있으며, 각 대학의 이사진들을 친인척 및 측근들로 구성해서 현재까지 학생 등록금을 계속적으로 횡령해 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각 학교들은 저희 한려대학교의 상황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보룡 교수는 이홍하 산하 대학의 학원유린 사태들을 최초로 언론에 폭로하고,
학원사태의 문제들을 여론화시켜 이홍하씨를 97년에 구속시킨 데 큰 역할을 했던 분입니다. 이보룡 교수는 이홍하
비리 폭로로 현재 이홍하로부터 임용이 탈락되었다가 관선이사진이 파견되고 나서 임용이 보류된 상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딴지일보> 네티즌 여러분! 한려대학교 교수협의회입니다.
99년 기묘년 새해에는 하시는 일들 더 잘되시고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여러분들의 그간 호응이 학교정상화를 위해 어렵게 싸우고 있는 저희에게 큰 격려가
되었고, 저희 대학 문제의 본질들이 여론화되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8,000여명의 네티즌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해
주셔서 <반교육자 이홍하 교육계 완전퇴진과 한려대학교 시립화>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23일 항소심 공판에서 이홍하씨는 징역 1년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어 저희
교수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재판결과에 대해 강한 항의를 표명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서명은 앞으로
더욱 필요합니다. 앞으로 계속될 서명운동은 저희가
후속작업으로 준비하고 있는 <반교육자 이홍하 교육계 완전퇴진>을 위한 자료로 소중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학교시립화를 위한 서명운동의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요.
한려대시립화를 위한 시민공청회에
난입하여 불법적으로 훼방을 놓고 있는 재단측
사람들.
저희들이 벌이고 있는 <반교육자 이홍하 교육계 완전퇴진 운동>은 결코
개인적인 불만이나 사심 때문이 아닙니다.
<교육>을 오로지 <장사>로밖에 볼 줄 모르는 이런 반교육적
인물들은 반드시 교육계에서 청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딴지일보> 애독자 여러분! 저의 대학의 정상화운동을 끝까지 지켜봐
주십시요. 저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결코 흐지부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명운동에 꼭
동참해 주시길 다시 한번 호소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