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과
함께 후끈해진 법정 분위기
이날
공판은 여느 법정에서처럼 검사의 공소장 요약 발언으로 시작됐다. 검사는 “전 대학교수인 피고인이 소송에서 패한
데 ‘불만’을 품고 피해자를 ‘보복’하기로 마음먹고 화살을 장전한 채 피해자에게 화살을 ‘발사’한 뒤 넘어뜨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혔다”며,
재판장에게 “민주질서에 도전한 사건에 대해 엄정하게 재판할 것”을 요청했다. 검찰은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밝혔지만,
공소장 내용은 보복이나 불만, 발사 등의 표현을 통해 살인미수 혐의를 염두에 둔 듯했다. 김 전 교수가 상해 혐의의 의도성마저 부인하는 상황에서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숨 막히는 법정 드라마를 떠올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김 전 교수의 모두 진술이 시작되면서 법정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피고인석에서 일어난 김 전 교수는 “오늘 법정에 오면서 법전을 들고 왔다. 판사님이 법에 따라 판결하시겠다고 약속하거나 맹세할
수 있습니까?”라며 공판을 진행하는 김용호 판사에게 ‘확약’을 받으려 했다. 재판부에 대한 불신을 예상치 못한 날 선 질문에 담은 셈이다.
하지만 김 판사는 “답변하지 않겠다."라며 곤혹스러워 하며 고개를 돌리더니, 뭔가 잘못 대답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약 5-10초 후
"당연한 얘기다”라는 말로 두리뭉실 넘어갔다.
흔치
않은 장면으로 모두 진술을 시작한 김 전 교수는 “내가 한 모든 행동은 [형법] 21조 1항에 따른 정당방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서 “사적으로 박 부장판사가 상처를 입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공적인 차원에서 나는 피해자이기에 국민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법부가 판결문이란 흉기를 휘둘러 많은 사법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판사의 본인 확인 과정에서
김 전 교수는 ‘사는 곳’을 묻자 “성동구치소입니다”라고 짧게 답했고, 주소지에 대해서는 “1월 말 가족들이 이사해서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검찰
질문 문서로 보며 세밀히 확인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속한 변호사들과 함께 김 전 교수의 변호인단에 합류한 박찬종 변호사는 “김씨가 가지고
간 석궁은 살상용이 아닌 레저용이었고, 이사를 앞두고 보관이 마땅치 않았던 회칼이 배낭에 있다는 사실도 본인이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검찰에 대해 “피해자와 옥신각신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에 대해 ‘과실 상해’로 공소장을 변경할 것을 검토할 것”을 주문하며,
재판부에 “재임용 거부에서 비롯된 사건인 만큼 교수지위 확인 소송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아량 있는 판단을 할 것”을 요청했다.
곧바로
검찰의 피고인 신문이 이어졌다. 검사는 공소장에 근거해 “석궁을 휴대한 피고인이 부장판사의 집 앞에서 기다렸고
석궁을 장전한 채 다가가 발사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하면서 “판결에 불만을 품고 수차례 찾아가 주소를 확인하는 등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미리
상해를 가할 의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전 교수는 “법대로 판결한다면 승소할 가능성이 높았다. 법을 무시하는 판사에 대해 국민저항권을
행사했다”면서 “국민저항권 차원의 ‘처단’은 ‘축출’을 뜻하는 것으로 상해를 가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건 당일 ‘불쑥’ 찾아가 패소 이유를
들으려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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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전 교수는 법정에서 ‘법학도로서’재판 진행에 대한 신선한 문제 제기를 했다. 2005년 여름 교수지위 확인 소송을 벌일 때의
김 전 교수의 모습.(사진/ 한겨레21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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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첫날 공판에서는 김 전 교수와 검찰의 신경전이 만만치 않았다. 검찰이 질문 내용을 자신에게 전달하지 않고 심리를
진행하려고 하자, 김 전 교수는 재판부에 “검찰의 질문 내용을 문서로 볼 수 있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곧바로 김 판사는 김 전 교수의 요구를
받아들여 “검찰의 심문 내용을 건네주라”고 했다. 검찰의 질문 내용을 받은 김 전 교수는 단어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확인하며 적절하지 않은 표현에
대해서는 수정을 요구했다. 예컨대 “불만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거나 “석궁을 겨누었다는 표현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한
것이다.
이어진
이기욱 변호사의 변론 과정에서 김 전 교수는 “교수지위 확인소송에서 승소할 것을 확신했다”면서 “연구 실적에
하자가 없고 ‘수학자’가 아니라 ‘법학도’로서 법리를 세밀하게 정리하고 완벽한 증거를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항소심 재판부가 [헌법]의
일사부재리 원칙이나 [민사소송법] 등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아 패소에 이르게 됐다”는 게 김 전 교수의 판단이다. 이에 관한 근거로 성균관대 소송대리인이
석명 이유서 제출 기일을 수차례 어겼음에도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으며, 증인 신문 때 증인 채택이나 예정일에 관련된 통보를 하지 않은 점
등을 꼽았다.
한때
재판부와 변호인 쪽이 피고인 호칭을 둘러싸고 충돌하기도 했다. 이날 이 변호사는 변론을 하면서 피고인을 줄곧
“김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김 판사가 “피고인으로 부르라”고 주문하자, 이 변호사는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변호인 쪽은 1시간30여 분에 걸친 공판에서 ‘피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거슬렸는지 김 판사는 공판 말미에
“다음부터는 피고인이라 부르세요”라고 정중하게 당부했다. 하지만 다음 공판에서도 변호인 쪽은 피고인이라 부르지 않을 듯하다. 법률에 재판을
할 때 피고인의 호칭에 대한 규정이 별도로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날카로운 신경전이 이어지던 공판은 끝날 무렵에 예상치 못했던
‘논쟁’으로 치달았다. 두툼한 증거 목록을 제출하자 김 전 교수는 “나도 증거 신청을 할 권리가 있다”면서 재판부에 자신의 의견을 들어줄 것을
제안했다. 발언권을 얻은 김 전 교수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 서류의 어느 부분이 공소 사실을 입증하는지 제대로 밝혀야 한다”면서 형사소송법에
따라 공소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한마디로 검찰은 공소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특정해서 밝혀야
하고, 재판부는 관련 법에 따라 공판을 진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피고인이 증거에 따른 반박 자료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공판에 신선한 문제 제기
이날
공판을 끝까지 지켜본 변호사 출신의 임종인 의원(무소속)은 “김 전 교수가 틀에 박힌 공판 진행에 신선한 문제
제기를 했다”면서 “판사와 변호사, 검사 등 법조인들이 두리뭉실 짜고 하는 방식의 재판에서 벗어나, 법조문에 따라 입증 취지를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 전 교수는 재판부에 ‘사건 당일(1월15일) 19시에서 21시까지 박홍우 부장판사의 전화 통화
내역에 관한 사실 조회’를 신청했다. 사건이 발생한 오후 6시30분 이후의 상황을 알고 싶다는 취지다. 이에 앞서 김 전 교수는 지난 2월28일에는
구속취소 청구를 기각한 판결이 ‘피고인의 구속을 유지해야 하는 사유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포함된 구속취소 청구 항고장을 서울동부지법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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