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박승화 기자)
덕성여대 총장 직무대리 신상전(58·독문과) 교수의 머리는 밤송이처럼 삐죽삐죽하다.
그의 머리는 가까이는 2001년 초 박원국 전 이사장이 학교에 복귀하면서, 멀게는 1997년 사학과
한상권 교수의 재임용 탈락 때부터 줄기차게 이어져온 덕성여대 민주화 운동의 ‘증거’
이다(<한겨레21> 359호,
367호
, 380호 참조).
2001년 내내 그는 박원국 이사장 일가 퇴진과 관선이사 파견을 요청하며 학생들과 함께
단식농성, 삭발농성을 반복했다. 결국 교육부는 교수, 재학생, 졸업생, 노조까지 가세한
덕성여대 정상화 요구의 손을 들어줬다. 교육부에서 파견한 임시이사들은 지난해 12월26일
이사회(이사장 이해동)를 열어 박씨 일가가 장악한 이사회에서 뽑았던 총장 직무대리를 해임하고
교수협의회 회장이었던 신 교수를 총장 직무대리로 임명했다. 이 소식은 덕성여대 구성원들은
물론 사립학교법 개정운동, 사학 민주화 운동을 벌이는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연말 선물이 됐다. “어깨는 무겁지만 덕성여대 정상화를 위해 제대로 된 걸음을 내딛게 돼 기쁩니다. 갈등이 컸던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너무 많습니다. 학생들, 교수들, 직원들이 뭉쳤던 경험을 살려 잘 헤쳐가리라 믿습니다.”
평범한 교수였던 그가 투사로 변신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상아탑이 더이상 사학 장사꾼들의
돈벌이 장소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따른 것이다. 이사장이 학교를 사유물로 여기며
쥐락펴락하는 가운데 학사행정은 물론 수업까지 파행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 바른 소리 내는
교수는 절차를 무시하고
재임용에서 탈락돼야 했고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은 명예훼손·업무방해로
고소 고발당하는 부끄러운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아직도 수많은 학교가 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바로잡기 위해 쏟았던 열정과 노력들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사학의 주인은 학생과 교수, 교직원, 학부모,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입니다.
결코 이사장이나 재단이 아닙니다. 이런 원칙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맡은 업무를 해나갈
생각입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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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전 총장 시대의 새로운 내홍 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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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과 한경숙 교수 재임용탈락 결정에 대해 우리 교수들은 분노한다
계명대, 장학금은 총장 쌈지돈
[인터뷰]3년째 홀로 시위벌이는 한철순 전직 계명대 교수
"우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김밥장사하는 할머니가 재산을 몽땅 털어 장학금을 내놓는 마당에 선생들이 애써 모은 장학기금을 개인 돈인양 써버리다니요?"
지난 99년 3월 이래 계명대 교정에서 36년째 계속되고 있는 신씨일가의 파행적인 대학경영을 비난하며 홀로 외롭게 시위를 벌이고 있는 계명대 해직교수 한철순(64)씨. 그는 최근 신일희 총장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마치 자신의 돈처럼 써 버린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개탄해 마지 않았다.
그는 "81년~82년 당시 신 총장이 주도해서 계명대 교수들를 비롯해 계성고 신명여고 교사들이 주머니 돈을 털어 조성한 동산장학기금을 개인 돈처럼 써 버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면서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될 일"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계명대 정상화를 부르짖는 한씨의 이런 몸짓은 5년전인 지난 96년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씨는 지난 96년 계명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학교측의 잘못된 대학경영을 문제삼아 두차례 걸쳐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학교측으로 부터 경고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당시 담당 학부장이 한씨의 이런 행동을 두고 "교육을 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밝혔슴에도 불구, 계명대측은 99년 2월부로 한씨를 학교에서 내몰았다. 한씨는 학교경영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지난 16년간 몸담아 온 정든 교정을 떠나야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계명대 정상화를 위한 한씨의 고달픈 시위는 계속 이어졌다. 소아마비로 인해 오른팔을 전혀 쓰지 못하는 한 씨에게는 현수막을 내거는 일조차 힘겨웠지만, 그의 외로운 시위는 지금 계명대학교 정상화를 위한 출발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어느 특정 개인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름 아닌 대학교육의 정상화 입니다. 계명대 정상화, 그것만이 내가 바라는 일입니다."
한씨의 이런 갸륵한 마음이 계명대 교정을 훈훈하게 달구면서, 계명대 내부에서 학교 정상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날로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한 씨의 외로운 시위는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얼마전 시위를 하던 한씨를 응원하러 나온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던 사이, 누군가 현수막을 거둬 가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한씨가 현수막을 도난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계명대 교수들과 학생들은 한씨를 격려하고 나섰다. 어떤 이는 새로운 현수막을 보고 싶다면서 돈까지 보내며 한 씨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
지난 13일 한씨는 "새로운 현수막을 제작했다. 어느 독지가의 도움으로 만든 새 현수막과 함께 앞으로 계속해서 시위를 벌여나갈 계획"이라면서 "내가 팔을 못쓰는 것을 알고 주변 교수들과 학생들이 현수막 거는 일을 곧잘 도와주곤 한다"고 말했다.
한씨는 "학생들과 교수들 모두 힘을 모아서 학교를 정상화하는데 동참했으면 한다"면서 "기회가 닿으면 상경해서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일 계획"이라고 야무진 각오를 내비쳤다.
마침 자신을 성원하는 사람들이 점심을 사겠다고 해서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는 한 씨. 그의 목소리는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만큼이나 밝아 보였다. 대학교육의 정상화를 외치며 지난 2년간 계속된 노교수의 시위는 더 이상 혼자만의 외로운 시위가 아니었다.
하니리포터 김성훈 기자 http://www.newsking.co.kr
계명대총장 '문서위조'혐의 고발
계명대, 이번에는 설립문서 '위조'
계명대 명예총장 '원조교제' 논란
편집시각 2001년03월13일15시11분 KST
파행거듭하는 계명대
얼마 전 청와대 앞에서 환갑을 넘긴 노교수가 닷새 동안 1인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그는 2년6개월 전에 계명대에서 해직된 수학과 한철순 교수다.
그는 이 대학 신일희 총장에게 `대들었다'가 억울하게 쫓겨난 뒤 대구시내 곳곳을 누비며 복직을 호소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자 청와대까지 찾아갔다. 그는 요즘 계명대 교수협의회에서 주는 한달 75만원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계명대에는 한 교수같은 해직교수가 10명이나 된다.
대구지역의 명문사학으로 이름을 날리던 계명대는 1996년 신 총장이 `장기집권'에 들어가면서 파행을 맞는다. 92년 5월 총장선거를 앞두고 단임을 약속했던 신 총장이 4년 임기를 채운 뒤 재출마가 어렵게 되자 총장직선제를 임명제로 바꿔버린 게 발단이었다. 당시 100여명이 넘는 교수가 이른바 `계명유신'에 저항했지만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격이었다.
96년 이후 총장임명제가 6년 동안 계속되면서 한해에도 1~2명씩의 교수들이 정든 강단을 떠났다. 그러나 학교쪽은 “자질이 떨어지고 문제가 있는 교수들이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견디다 못한 해직교수들은 법적인 대응에까지 나섰다. 이 과정에서 굵직굵직한 학교비리가 불거졌고 교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교수협의회는 `불온단체'로 낙인찍혔고, 해직교수 복직을 거론하는 건 금기가 돼버렸다.
계명대는 오늘날 우리 사학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총장 장기집권 체제는 학내비리를 은폐하는 가장 효율적 무기가 돼버렸다. 총장직선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대학 발전을 위한 대책을 요구하는 교수들에 대해서는 재임용 제도가 전가의 보도이다. 더욱이 계명대는 스스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오래 전에 상실했다. 교육부는 언제까지 계명대의 파행사태를 팔짱만 끼고 바라볼 것인가.
민권사회2부차장sunnyk@hani.co.kr
• 조용기, 김성혜 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