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질타하는 이 영화 "잘못 지적하는데 왜 민감해?"

[오마이뉴스 이선필 기자]

▲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비프힐에서 열린 영화 <부러진 화살> 갈라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한 정지영 감독.
ⓒ 민원기

"'13년 만에 하는 작품이 하필이면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냐?' 이건 이상한 질문 같습니다. 이 영화가 얼마나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는진 몰라도 사법부가 잘못한 구석을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사법부가 분명히 잘못하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민감해할 부분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법 부조리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이 영화를 두고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이었다. 제16회 부산영화제에서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영화 <부러진 화살>. 영화가 '민감한 소재'를 다뤘다는 데에 감독인 정지영의 답은 '문제 있으니 말하는 것'이었다.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비프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였다.

기자회견엔 영화 <부러진 화살> 주연 배우인 안성기, 박원상, 김지호가 함께했다. 하루 전인 9일 오후 레드카펫 후 진행된 상영회에서 관객들의 호응이 매우 좋았기 때문인지 감독과 배우의 표정에선 편안함이 묻어나왔다. 2007년 '석궁테러'로 알려진 김명호 교수 사건을 극화했다는 점에서 '<도가니>를 잇는 문제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 어제 영화를 보고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혹시 영화를 보고 찾아온 후배 영화인들이 격려의 말을 해주지 않던가요?

"제가 지금껏 만든 작품 중 제일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보통 영화를 보면 재밌다는 반응과 걱정된다는 반응이 다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걱정인 게 다 재미있다고 해서 그게 좀 염려스럽더군요."

- 사건 당사자인 김경호 교수 역의 안성기와는 오랜 인연이다. <남부군>(1990)과 <하얀 전쟁>(1992)에 이어 이번에도 캐스팅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시나리오를 들고 안성기씨를 찾아가 두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일단 하나는 돈이 없어 개런티 제대로 못 준다는 거, 또 하나 당신이랑 하면 영화가 성공할 것 같다는 거였습니다. '제가 안성기씨랑 두 작품을 했는데 둘 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껄끄러운 작품이었죠. 하지만 잘되지 않았습니까?' 이 얘길 했더니 이튿날 안성기씨가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성공적인 복귀작? "아직 관객들이 원하는 거 같아 다행"

단돈 4억 원. 영화 <부러진 화살>의 제작비로 알려졌다. 저예산 영화지만 명필름이 배급 및 마케팅을 맡았고 안성기, 김지호, 박원상 등 연기파 배우들이 등장한다. 또 하나 특기할만한 것은 어떤 영화보다도 화려한 카메오 진영이다. 영화엔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쌍용차 노동자 투쟁의 선봉 박훈 변호사, 스크린쿼터 투쟁 당시 영화인들과 함께 앞장섰던 양기완 이사장 등이 등장한다. 실제 사건 당시 참관한 방청객들도 일부 출연했다.

- 영화에 얼굴이 익숙한 다양한 카메오들이 나옵니다. 이분들은 또 어떻게 섭외했나요?

"제가 영화 한다니까 지인들이 한 컷이라도 좋으니 출연시켜 달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엄격하게 심사해서 선택된 사람들만 출연했습니다. 하하"

- 23회 차의 촬영이라고 알려졌습니다. 단기간에 촬영을 모두 마쳤다는데 혹시 제작비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습니까?

"제작비 중요하죠. 여러 번 촬영하면 시간도 그만큼 가는 거고, 전 테이크를 많이 가는 건 해당 장면에 대한 감독의 인식이 막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최선의 장면을 위해 여러 번 찍고 그러는 건데 전 수없이 많이 한다고 해서 최선이 나오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100% 원하는 건 아니더라도 이 이상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컷합니다. 빨리 찍지 않으면 분량을 다 못 채우니까 그렇기도 하고요"

- 너무 오랜만에 작품을 들고 찾았어요. 더 왕성한 활동을 하실 법도 했는데 앞으로 꾸준히 활동하실 거죠?

"관객이 원하면 앞으로 계속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싫어하면 그만 만들어야죠. 이번 영화를 작업하면서 관객들이 싫어하면 어떡하나 상상했습니다. '싫어하면 영화 이젠 안 하겠다'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반응을 보니 관객들이 절 필요로 하는 거 같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참, 이참에 말씀드리는데 기사에 보니 서형의 소설 <부러진 화살>이 원작으로 되어 있던데 소설은 제가 영화를 만들게 한 동기일 뿐이지 원작이 아닙니다. 원작이라면 수많은 재판 자료들이죠. 김명호 교수의 가족에게서 온 자료, 변호사와 주고받은 자료가 원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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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BIFF서 ‘부러진 화살’을 본 이유는?

‘도가니’를 넘어 사법부를 정면 겨냥한 화제작.. 2007년 ‘석궁테러사건’ 영화화

정지영 감독이 13년 만에 사법부를 비판한 화제작을 들고 돌아왔다. 이른바 김명호 교수의 석궁사건을 영화화한 ‘부러진 화살’이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것. 영화 ‘부러진 화살’은 16회 BIFF 기간 동안 화제작이나 신작을 소개하는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도가니에 이어 다시 논란의 중심이 될 화제작 ‘부러진 화살’

최근 영화 ‘도가니’로 광주 인화학교 장애인 성폭행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놓고 사법부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서, 영화 ‘부러진 화살’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지난 2007년 1월 전국적으로 이슈가 됐던 ‘석궁테러’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석궁테러’는 김 교수가 자신의 재판을 담당한 판사를 상대로 석궁을 쏘았다며 당시 사법부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다. 당시 김 교수는 1991년 성균관대의 수학과 조교수로 임용됐지만, 1995년 대학입시 본고사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뒤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96년 재임용에서도 탈락했다. 이어 김 교수는 2005년 성균관대를 상대로 ‘교수지위 확인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재판을 연기했고, 김 교수는 판사들을 직무유기로 고소했으나 끝내 패소했다. 이에 김 교수는 당시 2심 재판장이던 박홍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현 의정부 지법 법원장) 찾아가 석궁을 쏴 상처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당시 김 교수의 재판은 일부 증거의혹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재판이 진행됐고, 지난 2008년 대법원에서 결국 4년형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같은 김명호 교수의 이야기를 영화는 극 중 이름인 김경호(안성기 역) 교수를 통해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간다. 영화는 정직하고자 애쓰는 개인의 소신이, 사법부라는 조직의 논리에 의해 얼마나 쉽사리 파괴될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너무 다른 박준(박원상 역) 변호사와 김경호 교수 간의 만남을 통해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편파성을 낱낱이 밝혀낸다.

이 과정에서 감독 특유의 비판적 거리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선동적으로도 감상적으로도 흐르지 않는다. 시종일관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유쾌하다. 진짜 김 교수처럼 보였던 안성기의 인상깊은 연기와 재판장 역할을 맡아 욕을 얻어먹을 만큼 냉정한 연기를 보여준 문성근, 정의감에 불타는 기자를 그려낸 김지호, 노동인권 변호사를 연기한 박원상 등 출연 배우들의 실감 나는 표정도 일품이다.

“이렇게 통쾌한 영화는 없었다” 관객들 열띤 반응

9일 저녁 8시 30분 부산 영화의전당 800석 규모의 하늘연극장. ‘부러진 화살’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 좌석을 빼곡히 메운 관객들로부터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박수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일부 관객들은 기립박수까지 아끼지 않았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사법부를 정면 겨냥한 ‘부러진 화살’의 작품성에 대해 “이렇게 통쾌한 영화는 그동안 없었다”며 탄성이 쏟아졌다.

영화로 만들기엔 벅찬 내용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지영 감독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은 틀림없다”라며 “즐거워하셨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다. 끝까지 싸우고 있는 이분에게 대한 공감이 되었을 같아 흐뭇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 감독은 “영화가 상영되면 사법부가 긴장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다지 긴장할 것 같지 않다”면서 “흥행으로 사법부가 정말 긴장하도록 여러분이 도와달라”고 웃으며 말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철저한 저예산 영화다. 전체 촬영 회차가 23회에 불과했고, 배우들은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배우 김지호는 “23회차라는 상상하기 힘든 짧은 시간 안에 촬영이 이루어졌다”며 “오늘 처음 결과물을 봤는데 법정 공방신을 보며 어려운 영화를 위트있게 쉽게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주셔서 역시 정 감독님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원상도 “적은 예산으로 23회차라는 짧은 기간이 걸렸지만 힘든 것보다 즐거웠던 기억이 많다”면서 “많은 분들이 공감하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극 중 재판장을 맡아 분노를 한몸에 받았던 문성근은 “제가 미워야 이 영화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영화에는 실제 재판과 관련되거나 사법피해자들이 노개런티로 많이 출연해주셨고, 그분들의 자문을 구해 연기를 펼쳤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처음으로 열린 상영회에는 영화 속 출연자는 물론 현직 변호사들까지 다수 관람해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 변호사도 8일 ‘부러진 화살’의 첫 상영을 관람했다. 영화가 끝나자 오랫동안 박수를 친 뒤 자리를 뜬 문 변호사는 “문성근 씨로부터 초대를 받았다”며 “최근 이슈가 된 ‘도가니’와 함께 사법현실과 재판제도의 문제점을 다룬 영화라서 흥미롭게 봤다”고 소감을 말했다.

문 변호사는 “사법부와 재판제도 개혁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추진되어온 것”이라며 “아직도 우리 사법부의 현실엔 권위주의와 엘리트 의식이 남아있다고 본다.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국민참여재판 등의 언급이 하나의 해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13년 만에 메가폰 잡은 정지영 감독은 왜 문제작 선택했나?

다음날인 9일 오후 2시 30분 영화의전당 비프힐 3층. 이곳에서 열린 갈라프리젠테이션 기자회견에서도 정 감독과 배우들은 자신의 소신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지영 감독은 “13년 만에 하는 영화인데 왜 민감한 작품을 선택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영화를 찍으며 그전까지 알고 있었던 사법부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상당히 재미있었다”며 “얼마나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사법부가 제대로 하고 있나? 잘못하고 있는 게 맞지 않나? 민감하게 볼 것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이 제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에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면서 “염려스러운 것은 어떤 사람은 재밌고, 어떤 사람은 재미없고, 보통 그래야하는데 다 재밌다고 해서 걱정이다”라고 소탈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배우 김지호는 자신이 맡은 연기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를 꺼냈다. 김지호는 “극 중 장기자가 학생운동도 했을 것 같고, 사회의 불의를 참지 못하고, 가슴이 뜨거운 열정이 있는 마음이 있는 사람으로 봤다”며 “그래서 (노동인권변호사인) 박 변호사와 형하며 지낼 수 있을 만큼의 중성적 캐릭터로 연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김 교수가 처한 상황, 억울함은 물론 사법부의 횡포 등에 대해 밝히고 싶었고, 알리고 싶었던 기자의 역할을 표현해봤다”고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박원상은 “개인적으로는 가방끈이 가장 긴 역할을 맡아서 즐거웠다”면서 “우리 영화는 상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통하지 않고 있다”고 날카로운 시선을 전했다.

또한, 영화 속에 양기환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이사,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등 다양한 인사들이 출현하는 것을 두고 정 감독은 “제가 영화를 한다니 한 컷이라도 출연시켜달라고 했다”라며 “엄격하게 오디션을 봐서 선택된 사람들만 출연을 시켰다”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날 정 감독은 “영화의 원작이 서형 작가의 ‘부러진 화살’로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라며 “계기가 되었을 뿐 내용은 수많은 공판기록과 김 교수의 구명본부 사이트, 박 변호사 등으로부터 구해진 자료가 원작”이라고 말했다.

‘도가니’를 넘어 한층 강도 높게 사법부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들이대는 영화 ‘부러진 화살’. 벌써 논란의 중심에 선 이 영화를 사법부가 어떻게 바라볼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