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가 부러진 화살을 찾아 나섰다. 다소 늦은 뒷북용 탐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늦은 만큼 영화에 없는 새로운 사실들을 찾아낸 점은 좋게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방송내용을 유심히 보면 찾아낸 것이 아니라 이제야 내놓는 진실이라고도 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새롭게 밝힌 내용은 역시나 화살과 혈흔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다. 5년 전 석궁사건의 의혹을 SBS는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 김 교수의 석궁으로는 화살이 박힐 수 없었다
먼저 제작진 역시 사건 재구성을 위해 석궁실험을 했다. 제작진이 김명호 교수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석궁으로 실험한 결과 우선 그 석궁으로는 아무리 근접발사를 해도 배에 꽂힐 수가 없었다. 인체에 화살이 박히기 위해서는 아주 다른 석궁이라고 해도 좋을 수렵용으로 발사해야 했다. 이 실험을 통해서 적어도 김 교수의 석궁이 배에 꽂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도 있다. 사건 당일 출동했던 119 대원의 최초 진술에는 화살이 튕겨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돼 있다.
또 다른 한 가지 의문점이 제기됐다. 경찰이 제시한 박 판사의 옷에 난 석궁자국들은 모두 가로 방향인 데 반해,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의 실험 결과 옷에 난 석궁자국들은 모두 세로 방향이라는 점이 이상했다. 석궁을 거의 머리 위치에서 아주 가깝게 해서 발사하면 경찰 증거물처럼 겉옷과 조끼의 석궁 자국이 동떨어질 수 있으며 또한 자국의 생김새도 가로방향으로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실험 결과는 석궁을 정조준해 발사했다는 박 판사의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부러진 화살의 최대 이슈, 와이셔츠에만 없는 혈흔 문제이다. SBS는 서울대 법의학팀과 함께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와이셔츠를 세탁했을 때 혈흔이 검출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실험결과 몇 차례 강력한 세탁을 했음에도 혈흔은 나왔다. 여전히 수상하다. 누군가 조작을 했다는 심증은 있지만,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 SBS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부러진 화살을 굳이 칭찬해야 한다면 이런저런 취재와 실험보다도 솔직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밝힌 당시의 화면과 취재기자의 말은 그때에도 이미 SBS 아니 모든 언론기관들이 석궁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는 행간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테러를 당한 사건이라는 지위의 무게에 눌려
언론은 물론 모든 관련자들이 침묵하고, 거짓에 동조했던 것이 부러진 화살의 진정한 진실일 것이다.
5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영화는 부러진 화살이 아니라 사라진 화살이라고 해도 된다. 현장에는 부러진 화살이 있었다. 그것은 박 판사가 법정에 출두해서도 밝힌 사실이다. 자신이 본 화살이 경찰 증거물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증거물이 사라졌다.
그러나 김 교수가 가져간 화살의 수와 경찰이 제시한 화살의 숫자는 또 같다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 이것이 바로 부러진 화살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멀쩡한 화살로 바꿔치기 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참조: '
해도 너무한 대충
수사', 한국일보 2007.9.5일).
게다가 경찰이 제시한 어떤 화살에서도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5년 전 사건당일 경찰은 석궁과 화살 3발을 증거물로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나 진짜 김 교수가 가져간 화살을 발견한 것은 경찰이 아니라 SBS기자였다. 그때가 밤 10시 20분경이었다. 그런데 경찰이 그보다 이른 시간에 증거물이라면서 화살을 공개했다는 것도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황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석궁사건은 비단 법원만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
5년 전 언론이 입을 닫은 것처럼 당시 박 판사가 찾아간 병원의사들의 말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기자의 질문에 의사는 손톱만큼 다쳤다고 했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서는 엄청난 수위의 발언을 했다. 그 상처가 석궁에 난 것이냐에 진위는 일단 떠나서 손톱만큼 다쳤다는 말과 달리 의사는 “생명에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는 말장난으로 여론을 호도했다.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다. 손톱만큼 다쳤으니 당연히 죽을 일은 없다.
그러나 그저 상처 소독만 하는 수준의 치료를 한 의사가 생명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건을 왜곡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의사 자발적인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5년이 지나서 의사의 말을 어이없다는 투로 증언한 그 기자가 그때에도 그런 자세로 사건을 파고들었다면 영화 부러진 화살은 만들어지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부러진 화살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이 더 두려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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